일본 프로야구와 한국인 선수③: 이승엽, 박찬호, 이대호

들어가며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한국인 선수 중에 선동열과 이종범, 구대성은 1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이후 진출한 선동열의 경기는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위성방송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기도 했다. 이후 2011년에 박찬호와 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자 팬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 리거 박찬호의 경기는 중계권 협상도 치열했다. 박찬호와 이승엽, 이대호의 경기는 방송과 온라인으로 중계되었다.

라이온킹 이승엽

국민타자 일본 진출

고교시절 투타에서 활약을 보였던 이승엽은 1995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뒤, 타자로 전환했다. 당시 백인천 감독로부터 외다리 타법을 익혔다. 3년째인 1997년에 홈런 1위(32개), 타점 1위(114개), 최다 안타(170개)로 시즌 MVP에 올랐다. 1998년에는 홈런 38개를 쏘아 올렸으며, 1999년에는 홈런(54개) 타점(123개), 득점(128점), 출루율(0.458), 장타율(0.733)에서 1위를 차지해 5관왕에 올랐다. 2003년에는 최연소 300 홈런에 올랐으며, 그해 홈런 56개로 아시아 기록을 세웠다.





2003년에 FA 자격을 얻은 이승엽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치바 롯데 마린스에 이적했다. 연봉은 2억 엔이었는데, 당시 롯데 마린스에서 연봉 2억 엔이 넘는 선수는 이승엽을 제외하면 1명이 있었다. 파격적인 대우에 팀내 선수들이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첫해 이승엽은 홈런 14개, 타율 0.290, 타점 50개로 기대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듬해 2005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저조한 타율로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지만, 곧 중심 타선으로 복귀했다. 타율은 0.260에 머물렀지만 홈런 30개로 팀내 최다를 기록했다. 이승엽은 롯데 마린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했고, 일본시리즈에서도 홈런 3개를 쳐내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2006년에도 다시 메이저 리그에 가려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승엽은 전성기의 기량을 발휘했다. 143경기에 출전해 타율 2위(0.323), 타점 1위(108개), 홈런 1위(41개)를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팀내 주전 선수들의 부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2007년에도 메이저 리그로 진출하고자 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연봉은 6억 5000만 엔이었으며, 팀이 우승하면 메이저 리그 진출을 보장한다는 옵션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성적은 홈런 30개에 머물렀다. 2008년 이후에도 부진은 계속되었으며, 2010년에 결국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되었다.





이승엽은 2011년에 오릭스 버팔로즈와 연봉 1억 5000만 엔에 계약했다.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연봉을 대폭 낮추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팀 중심 타선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홈런 15개에 머물렀다. 결국 2년 계약을 깨고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당시 오릭스에는 박찬호가 있었다.

결국 이승엽은 8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2011년 12월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했다. 당시 연봉은 8억 원에 플러스 옵셥 3억 엔이었다. 한일 통산 2000개 안타, 한일 통산 500개 홈런을 달성하며,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승리에 공헌했다. 2017년에 은퇴를 선언한 뒤 해설위원 등을 거쳐 2022년에는 두산 베어스 감독에 취임했다.

이승엽 경기 중계

이승엽의 경기는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으며, 방송과 함께 인터넷 전송도 실시되었다. 롯데 마린스는 높은 중계권료를 요구했다. 홈경기 중계권을 가진 롯데 마린스는 TV와 인터넷을 포함한 중계권료로 15억 원을 요구했다. 이승엽의 경기는 위성을 통해 중계되었다. 다음도 치바 마린스의 이승엽 경기를 생중계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자 관심은 더욱 커졌다. SBS스포츠는 2006년과 200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생중계했다. 다음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인터리그 9경기를 독점 중계했다. 2009년에는 중계권을 확보한 아이코가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생중계했으며, 하이라이트는 VOD로 제공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한국인 최초 메이저 리거

1994년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 2005년에 100승을 달성했고, 2010년에는 124승으로 아시아인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메이저 리그, 마이너 리그, 일본 프로야구,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산 156승을 기록했다.

박찬호는 메이저 리그 3년째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LA 다저스에서 2001년까지 통산 75승을 기록했다. 빠른 공과 슬러브, 커브 등을 적절히 구사해 승리를 거뒀다. 5년 연속 13승 이상을 올렸으며, 2001년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해 내셔널 리그 올스타에 선정돼 1이닝을 던졌으며, 이후 시즌에서도 완봉승과 완투승을 건졌다.

메이저 리그에서 퍼시픽 리그로

FA 자격을 얻은 2002년에 텍사스 레인전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텍사스 레인전스에서 부상과 경기장 부적응 등으로 성적은 부진했다. 그럼에도 메이저 리그 진출 11년 만에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2005년 7월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6년 시즌이 끝난 뒤, 다시 FA 자격을 얻어 2007년에 뉴욕 메츠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거쳐 LA 다저스에 돌아왔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뉴욕 양키스를 거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메이저 리그를 마무리했다. 그는 17시즌 동안 통산 476경기에 등판해 124승 98패 2세이브를 기록했다.





2010년 12월 오릭스 버팔로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선발 로테이션으로 기대를 했지만, 7경기에 등판해 1승 5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2군으로 강등돼 시즌을 마쳤다. 결국 오릭스을 등지고 2011년 12월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2012년 11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박찬호 경기 중계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그 박찬호의 경기는 한국에서 관심을 높았다. 특히 IMF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박찬호의 활약은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이를 반영하듯 박찬호 경기중계는 시청률이 25% 이상 나오기도 했다. 1998년에 경인지역 민방인 OBS는 메이저 리그 독점 중계권을 확보했다. OBS는 지역민방이기 때문에 문화관광부는 KBS와 MBC, SBS에 공동중계 등의 방식으로 모든 국민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KBS와 MBC, SBS도 중계권 확보경쟁에 뛰어들었다.





방송뿐만 아니라 PC통신, 인터넷을 통한 중계경쟁도 뜨거웠다. 1997년에 KBS는 인터넷을 통해 박찬고 경기를 생중계했다. 이어 하이텔은 1998년 박찬호 경기를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유니텔도 1998년에 박찬호 등판 경기를 인터넷으로 전송했다. 이후에는 온라인 전송이 일반화되었다.

빅보이 이대호

타격 7관왕의 오릭스행

200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뒤, 어깨 부상을 당해 타자로 바꿨지만 이후에도 부상이 겹쳐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다. 2004년부터 주전으로 정착했다. 2006년에 타율과 안타, 홈런에서 1위를 차지해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2011년에도 타격 3관왕을 지켰다.

퍼시픽 리그 우승을 노리며 이대호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오릭스 버팔로스는 2011년 12월에 2년간 계약금 2억 엔, 연봉 2억 5000만 엔, 인센티브 3000만 엔에 계약했다. 첫시즌에서 홈런 24개, 타점 91개로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또한 한국 프로야구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 타점왕을 차지했으며, 1루수 부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에도 홈런 24개, 타점 91개를 기록했으며, 타율도 3할을 넘었다.

스프트뱅크에서 일본시리즈 우승

2013년 12월에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2년간 9억 엔에 3년째에는 재계약 선택권을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2014년에 퍼시픽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쳤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15년에도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퍼시픽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일본시리즈에서도 우승했다. 이대호는 일본시리즈에서 홈런 2개를 날렸으며, 한국인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이후 이대호는 2016년 2월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간 400만 달러에 스플릿 계약을 체결해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다. 메이저 리그 104경기에 출전해 홈런 14개를 날렸다. 이후 2017년 4년간 150억 원이라는 최고금액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했다. 2021년 10월에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22년 10월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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