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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를 빛낸 한국인 선수2: 선동열, 이종범, 구대성

일본 프로야구를 빛낸 한국선수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에 발족해 역사는 길지 않지만 한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 프로야구로 옮겨 활약한 선수도 적지 않다. 이들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성공해 미국으로 진출한 선수도 있으며, 한국으로 복귀한 선수도 있다. 우선 선동열, 이종범, 구대성을 소개한다.

선동열

한국 최고의 투수

선동열은 해태 타이거즈를 대표하는 투수일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투수로 꼽힌다. 스피드와 슬라이더를 무기로 한국 프로야구 통산 367개 경기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을 기록했으며, 방어율은 1.20. 한국시리즈에서 6번 우승했다.



게다가 3년간 0점대 방어율 기록까지 세웠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에서 일본에 진출한 첫 선수이며, 일본에서도 신기록을 세우는 등 한일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5년 시즌이 끝난 뒤 해태 구단에 해외에서 뛰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미 1994년에 박찬호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상태였다. 이에 주니치 드래곤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메이저 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등 미국과 일본에서 손을 들었다. 한국 야구계는 강하게 반대하는 등 선동열의 해외진출은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에서 38세이브 기록

결국 여론의 등을 업고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했다. 2년 임대 형식으로 이적료 3억 엔, 계약금 5000만 엔, 연봉 1억 엔에 인센티브 최대 5000만 엔이 추가되었다.

당시 주니치 감독은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였다. 그러나 주니치에서 첫해 성적은 좋지 않았다. 2년째인 1997년에는 일본 기록인 38세이브를 달성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공동1위를 지키며 깨지지 않고 있다. 1998년에는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하며 주니치의 퍼시픽 리그 2위에 공헌했다. 1999년에는 초기 부진을 딛고 28세이브를 달성해 주니치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선동열은 일본시리즈에 등판한 뒤 은퇴했다.

중계방송 새시대

선동열의 경기는 중계방송에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한국 최고 투수의 활약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선동열은 구원투수 전문이기 때문에 언제 등판할 지 몰라 중계방송은 쉽지 않았다. 방송사는 구원투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스포츠 뉴스에서 보도했다. 당시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는 박찬호 경기는 KBS에서 중계했다.



주니치 경기는 1998년에 이종범이 주니치에 이적하자 한국에서는 선동열과 이종범의 활약에 관심이 컸다. 1998년에는 일본 위성채널인 OSB-TV에서 주니치의 모든 경기를 독점 중계했다. 이를 직접 수신하거나 재전송하는 케이블TV를 통해 시청했다. 1999년에는 천리안에서 인터넷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데이콤은 OSB와 독점 계약을 체결해 온라인 전송을 했다.

선동열은 은퇴 후에는 주니치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04년에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했으며, 2005년에 감독에 올라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삼성은 2006년에도 우승했다. 2012년에는 기아 타이거즈로 옮겼으며, 2017년과 2018년에는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다.

이종범

한국의 야구 천재, 일본에서는…

선동열과 비슷한 시기에 야구 천재로 불리는 이종범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했다. 이종범은 1993년에 해태에 입단했다. 첫해부터 맹활약을 펼쳐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2년째인 1994년에는 수위타자와 도루왕에 올랐다. 도루왕은 1996년과 1997년에도 달성했다. 특히 1997년에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트리플 플레이스, 즉 타율 .324, 30 홈런, 63 도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1998년에 주니치 드래곤즈에 이적했다. 이적료 4억 5000만 엔, 연봉 8000만 엔이었다. 이종범은 주니치에서 적응 실패와 팔꿈치 부상, 잦은 실책 등으로 성적은 부진했다. 주니치에서 이종법은 1번 타자로 출전했지만 수비에서 실책이 잦았다. 그럼에도 수비폭이 넓어 감독의 인정을 받았다. 수비 포지션은 유격수였지만, 외야수로 전환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팔꿈치 부상으로 장기간 쉬어야 했다.

4년 만에 한국 복귀

성적 부진과 스트레스까지 겹쳐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이후 미국에 가고자 했지만 기아 타이거즈 재창단에 맞춰 4년 만이 2001년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2003년에 20 홈런과 50 도루를 기록해 20-20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종범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006년과 2007년 최악의 성적으로 기록하며 2군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며, 연봉도 삭감되었다. 2008년에 역대 8번째 1500 안타를 기록했다. 은퇴 위기에 몰렸던 이종범은  2009년에 최소 경기 500 도루를 기록했다. 2010년에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며 마지막 빛을 냈다.

구대성

구원투수, 영구임대

1993년에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구대성은 대학 시절에 어깨를 혹사해 첫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1994년에 마무리 투수로 전환해 1996년에 18승 3패 24세이브로 최다승과 최다 구원승에 올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대표와 만나 일본 타선을 2번이나 잠재웠다.

2001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영구임대 형태로 입단했다. 이적료는 3억 5000만 엔, 계약금은 1억 엔에 연봉은 1억 5000만 엔이었다. 2년차에는 평균 자책점 2위에 올랐지만, 팀 타선의 불발로 그다지 빛을 내지 못했다. 2003년에는 계약금을 2000만 엔 삭감해 재계약했다. 대신 인센티브를 5000만 엔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4년까지 4년간 24승 34패 10세이브를 기록했다. 2004년에 구단재편으로 오릭스가 긴키 버팔로즈를 인수했는데, 잔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결국 2005년에 뉴욕 메츠로 옮겼다. 중간 계투로 출전했지만, 시즌 중반에 2군으로 밀렸다. 특별한 성적으로 거두지 못한채 계약이 해지되었다. 짧은 메이저 리그를 정리하고 2006년에 한화 이글스에 복귀했다.



일본과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제1회 WBC에 출전해 일본과 1차전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2차전에서는 9회 등판했지만 솔로 홈런을 맞았다. 2007년에 통산 200세이브를 기록했다. 이후 눈에 띄는 성적이 보이지 못한 채 2010년 8월에 은퇴한 뒤, 호주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나오며

선동열과 이종범의 주니치 진출은 한국 팬들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이들의 경기는 위성방송으로 중계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을 통한 전송도 시도됐다. 특히 2011년에 박찬호와 이승엽이 오릭스에 입단하자 팬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중계권 협상도 치열해졌다. 박찬호와 이승엽의 활약은 어떻게 중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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